06 Mar 애석한 인생 [앵콜 칼럼 #4, 2015]
어느 신문 기사에서 황혼 이혼에 관한 사례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산 노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조정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된 부부, 조정관과 함께 마지막 점심을 하게 되었다. 통닭을 시켰는데, 할아버지는 늘 하시던 대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날갯죽지 살을 뜯어 할머니께 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할머니가 소리쳤다. “당신은 늘 이런 식이야, 나는 가슴살을 좋아하는데 한 번도 가슴을 살을 준적이 없고, 꼭 내가 싫어하는 날갯죽지 살을 주곤 했어!” 그러자 할아버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의 고기를 안 먹고 당신을 준 것인데!” 언성을 높이며 또 그렇게 헤어졌다. 헤어진 후, 할아버지는 “아, 평생 나는 나 좋아하는 부위이기에 당연히 아내에게 먼저 준 것인데, 한 번도 아내가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지 물어 본적이 없었구나”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에 전화를 돌렸지만, 할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머니도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자기 좋아하는 부위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주었는데 한 번도 맛있게 먹은 적이 없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라는 생각에 할머니도 할아버지께 전화를 하였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할아버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찾아 보았더니, “여보 미안했오”라는 문자가 찍힌 전화를 손에 꼭 잡고 홀로 세상을 떠났다는 스토리이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평생 서로는 상대방을 위한다고 살았는데, 한 번도 공감하는 사랑을 해 본적이 없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그렇다, 사랑은 공감되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가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방법, 곧 아들이 인간의 형상으로 이 땅에 내려오셔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 과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데, 이 사랑을 하나님께서 공감하실까? 다시 한 번 내 언행을 돌아보며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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