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Sep 호불호[好不好]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곳이 인터넷 공간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슈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그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런 현상은 미국, 한국, 서구, 아시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 우리도 이런 현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 또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견해와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면 호불호적인 극단적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주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보편적 인간의 주관적 성향은 원죄의 결과이기도 하다. 인간이 죄를 짓게 된 이유는 객관적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주관적 판단, 보암직하고 먹음직 하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윈죄의 영향력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원을 받은 사람의 특징, 믿음의 특징은 내 생각, 느낌대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견 이전에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리고 이웃은 이런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나는 사안의 전체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한 부분을 보며 그 것이 마치 전체적 사실인양 생각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볼 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공동체에는 그렇기에 배려가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여 줄줄 아는 매너가 있다. 그래서 합의와 절충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런 믿음이 더욱 나에게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고 인생의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편협하게 될 수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내 생각, 상대방의 생각, 그리고 하나님의 뜻, 진지하게 물으며 더욱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 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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